INSIGHT

[박정훈의 로봇가라사대]물류로봇 도입, ‘RaaS’ 통해 보다 싸고 쉽게

by 박정훈

2017년 05월 18일

‘비용’과 ‘운영문제’, 물류로봇 상용화의 걸림돌

물류RaaS, ‘Rogistics’ 시대 여는 기폭제 될까

물류로봇

글. 박정훈 CJ미래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키바(KIVA), 병주고 약주고

 

10여 년 전, 키바시스템즈는 북미지역의 다수 기업에 ‘키바 로봇’을 공급하면서 물류로봇을 대중화하는 데에 앞장섰다. 하지만 2012년 아마존이 키바시스템즈를 인수한 뒤 아마존을 제외한 어떤 기업도 키바 로봇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아마존이 키바의 일반판매를 금지하고, 아마존 자체 물류시설을 위해서만 키바를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물류로봇, 특히 키바에 관심을 막 갖기 시작하던 많은 기업은 로봇 도입의 꿈을 접어야 하는 듯했다. 기존에 키바를 이용하던 기업도 마찬가지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Rogistics(Robot in Logistics)’의 시대가 올 것이라 주창하던 필자도 갑갑하긴 마찬가지였다. 참신한 콘셉트로 물류센터 자동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되던 물류로봇의 성장이 주춤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바가 병만 주고 간 것은 아니었다. 물류로봇의 가능성만 살짝 보여주고 아마존 창고 안으로 쏙 숨어버린 키바시스템즈는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물류로봇 개발경쟁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 물류로봇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한 물류기업, 로봇기업, 물류설비기업, 스타트업 등을 Rogistics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로 최근 물류로봇계의 샛별로 떠오른 ‘로커스로보틱스(Locus Robotics)’를 들 수 있겠다. 로커스로보틱스는 북미 지역의 물류기업인 콰이어트로지스틱스(Quiet Logistics)로부터 분사한 물류로봇 전문기업이다. 콰이어트로지스틱스는 원래 키바를 활용해 의류제품의 물류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키바시스템즈가 아마존에 인수되고 더 이상 키바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콰이어트로지스틱스는 직접 로봇 개발에 나섰고, 마침내 의류제품을 다루는 데 더 적합한 로커스(Locus)라는 물류로봇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IEEE Spectrum, 2016)

 

다시 성장하는 물류로봇시장

 

키바가 ‘본의 아니게’ 물류로봇 시장의 성장판을 열어준 것이다. 시장전문조사기관인 트랙티카(Tractica)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글로벌 물류로봇 시장은 2016년 19억 달러(약 2.3조 원)에서 2021년 224억 달러(약 27조 원)로 가파른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출하 대수도 2016년 약 4만 대에서 2021년 62만 대로 5년 동안 15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물류로봇 시장규모▲ 글로벌 물류로봇 시장규모 및 출하 대수 성장 전망, 2016-2021

 

어디 그뿐인가. 최근에는 물류로봇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공급자 수가 늘었으며,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의 시장 참여도 확대되는 등 물류로봇의 공급환경이 대폭 개선되고 있다. 이에 제조업체, 유통업체, 물류업체 등 다양한 수요자도 호응을 보이며 산업 성장을 돋우고 있다.

 

성장의 증거는 물류로봇의 도입 사례를 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물류센터에서 사용되는 키바형의 GTM(Goods to Man: 물건이 사람에게 오는 방식) 로봇만 하더라도, 로커스로보틱스의 로커스, 클리어패스로보틱스의 오토(이하 미국), 그레이오렌지로보틱스의 버틀러(인도), 독일 쿠카로보틱스의 자회사인 스위스로그의 캐리픽로봇(중국계) 등이 이미 현장에서 운영되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인도 그레이오렌지사의 버틀러를 실전에 투입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의 이케아라 할 수 있는 니토리가 오사카에 위치한 자사 물류센터(통신판매제품 발송센터)에 약 80대의 버틀러 로봇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올해 안에 우리나라 물류센터에서도 로봇이 운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이야말로 물류로봇시장에 ‘장밋빛미래’가 드리워진 듯하다.

 

장밋빛미래를 가로막는 것

 

하지만 정말 물류로봇 시장은 탄탄대로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일까? 아무리 아름다운 장미라도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법. 현재 물류로봇을 이미 도입했거나 향후 도입을 계획하고 있는 사례를 가만히 살펴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발견된다. 바로 물류로봇을 도입하는 주체가 대부분 물류기업이 아닌 대규모 화주들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물류로봇 도입이 ‘상당한 자본투자가 이뤄지는 대형 프로젝트’로 진행되며, 보통 로봇기반 자동화 물류센터를 신축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물론 대규모 투자로 인한 물류로봇 도입이 시장 성장에 장애물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중소형 사업자가 로봇 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분명 아쉬운 점이다. 시장의 지속적 성장을 지지해줄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중소형 사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물류로봇 도입에 문제가 되는 것은 자본뿐만이 아니다. 운영상의 문제도 로봇 도입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로봇은 알아서 움직이지 않는다. 로봇을 통제하는 체계와 시스템을 운영하는 역량이 중요한 까닭이다. 그런데 로봇 도입을 꿈꾸는 많은 기업이 로봇에 대한 운영통제, 관제, 물류작업 상황 변화에 따른 프로그램 조정,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유지보수 등에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로봇 도입이 당장의 합리적이고 최적화된 운영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물류로봇 도입의 문제는 ‘비용’과 ‘운영’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 문제들이 한 번에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렴한 비용으로, 운영 걱정 없이 로봇을 도입할 수만 있다면 보다 많은 물류 수행사가 Rogistics의 세계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이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은 어디에 있을까?

 

RaaS, 물류로봇의 비전

 

해답을 물류RaaS(Logistics Robot as a Service: 클라우드 기반 스마트 물류로봇)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류RaaS가 무엇이냐고? 물류RaaS는 쉽게 말해 물류로봇을 빌려 쓴다는 개념이다. 딱 들어맞는 비교는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MS Office와 MS Office365의 차이를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한 번 구매하면 그만인 게 아니라, 사용한 만큼 돈을 지불하면서 지속적으로 개선된 서비스나 콘텐츠를 제공받는 것, 즉 필요한 만큼 이용하고 그 만큼의 대가를 지불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RaaS는 ‘온디맨드 물류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혹은 ‘클라우드 기반의 스마트 로봇’이라고도 할 수 있다.

 

큰 투자 없이 필요한 만큼만 로봇을 이용할 수 있다면 아마 많은 업체가 로봇에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로봇을 빌려 쓰는 게 가능할까? 물론이다. 대표적으로는 인비아로보틱스(www.inviarobotics.com)가 있다. 사용자는 피킹 1회당 약 30센트를 지불하는 것으로 인비아로보틱스의 물류로봇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참고로 글로벌 평균 수준의 피킹 원가는 회당 약 80센트 수준이다.

 

RaaS의 구체적인 사례는 몇 개가 더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상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대신 여기서는 RaaS가 왜 현재 물류로봇 시장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지를 위주로 살펴볼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현재 물류로봇 상용화의 문제로 ‘비용’과 ‘운영’ 두 가지를 지목했다. RaaS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비용의 경제성’ 때문이다. 로봇을 대량으로 구매해 창고에 들였다고 가정해보자. 생각보다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해도 구매한 것을 다시 무를 수는 없다. 즉 그만큼의 비용 낭비가 발생한다. 반면 로봇을 필요한 만큼 빌려 쓰면, 도입 성과나 작업환경의 변화 등 여러 요인을 검토하면서 로봇을 유동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로봇의 ‘운영’과 관련 있다. 물류로봇도 인간 작업자와 마찬가지로 현장 작업을 위한 체계가 필요하며, 그 체계가 곧 로봇이 수행하는 작업의 성과를 좌우한다. 요컨대 물류로봇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RMS(Robot Management System)가 필수적이다. 어쩌면 로봇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RMS이다. 우리는 물류로봇이라 하면 보통 로봇 자체의 생김새나 성능에 주목하지만, TV든 스마트폰이든 모든 새로운 장비/장치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장비/장치 안에 있는 소프트웨어다. 즉 다수의 장비를 운용하는 데에서 핵심은 이러한 장비를 관제·통제하는 알고리즘 시스템이다.

RMS는 주문을 분석한 뒤 최적화된 동선으로 피킹 오더를 내리고, 제품별 수요율에 따라 각 박스를 적재할 위치를 갱신하여 지시하는 등 기존 WMS가 수행하던 역할을 대체한다. WMS는 실시간으로 작업자의 움직임까지 제어하지는 않는 반면, RMS는 로봇의 작업 간 동선까지도 최적화한다.

 

더욱이 물류센터에서 운용되는 물류로봇이 1~2대로만 구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장 대표적인 물류로봇인 키바를 생각해보자. 키바는 로봇 그 자체도 대단하지만, 사실 많은 전문가들은 그 뒤에 숨어 키바 군단을 제어하는 운영시스템을 더 높이 평가한다. 키바 소개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 한정된 공간에서 수백 대의 로봇이 단 한 번도 충돌하지 않고 최적화된 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랙의 적재 위치가 최적화된 상태로 유동적으로 배치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시스템 때문이다. 결국 시스템의 수준 차이가 로봇 군단이 빚어내는 퍼포먼스의 차이를 낳는다.

 

그런데 물류로봇을 거느리는 운영시스템은 아직 발전단계로서, 실전 운영과정에서 이뤄지는 반복적인 작업 수행을 통해 개선될 여지가 많다. 이를 ‘러닝(Leaning)효과’라 한다. 가령 운영시스템 v1.0이 있다고 해보자. 시간이 지나며 v1.1, 1.2, 2.0, 2.1 등이 나올 것이다. 만약 로봇과 시스템을 ‘구매’하여 도입한다면 사용자는 운영시스템이 업데이트 될 때마다 그것을 새로 구매하거나 다른 계약을 맺어야 한다. 그렇다보니 사용자가 운영시스템의 개선 효과를 못 누릴 가능성도 높다.

 

반면 로봇과 시스템을 ‘대여’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운영시스템이 업데이트 되더라도 사용자는 그것을 새로 구매할 필요 없이 ‘클라우드’ 방식으로 최신 운영시스템을 이용하면 된다. 즉 현장 운영을 통해 로봇 운영시스템의 성능을 개선하고 이렇게 개선된 방식을 다시 현장에 적용하는 선순환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회성구매’가 아닌 ‘as a Service’ 방식이 필요하며, 이것이 바로 RaaS가 대세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인비아로보틱스

▲ 인비아로보틱스 운영시스템 화면예시(출처:www.inviarobotics.com)

 

로커스로보틱스

▲ 로커스로보틱스 운영시스템 구성도(출처:www.locusrobotics.com)

 

RaaS, Rogistics 실현 이끈다

 

지금까지 우리는 물류로봇 분야에 한정하여 이야기했지만, 다른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도 온디맨드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이 각광받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IDC가 2016년 12월에 발표한 ‘세계로봇시장 10대 예측 보고서(IDC FutureScape: Worldwide Robotics 2017 Predictions)’에서도 10가지 핵심 예측 사항 가운데 RaaS가 가장 높은 자리를 점하고 있다.

 

IDC 보고서는 RaaS가 전체 상용 로봇 어플리케이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까지 30% 수준까지 확대되면서, 로봇의 도입 비용을 상당 수준으로 낮춰줄 것으로 전망한다. 이 수치를 그대로 물류로봇 분야로 가져와보면, 2~3년 후 도입되는 물류로봇의 약 1/3은 ‘as a Service’의 방식이 될 거라는 이야기다.

 

자, 수년 전부터 필자가 목청 높여 외쳤던 ‘Rogistics’가 이제 눈앞에 온 것 같지 않은가. 필자는 RaaS야말로, 물류로봇 시장을 역치(Threshold)에 도달케 하는 추진력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대규모 투자 부담 때문에 물류로봇 도입을 망설이고 있다면, 물량 변동에 따라 로봇 사용량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싶거나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물류로봇의 작업능력을 고도화시키고픈 물류인이라면, 물류로봇 SI사업을 꿈꾸는 비즈니스맨이거나 물류로봇 앱으로 흥하고 싶은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바로 물류RaaS에 주목해 보자!



박정훈

CJ미래경영연구원 SCM/Robotics 연구분야 수석. 가차없이 다가오는 Rogistics(Robotics+Logistics) 시대를 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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